추천시
덮어준다는 것 / 복효근
김탄
2018. 11. 16. 16:13
달팽이 두 마리가 붙어 있다
빈집에서 길게 몸을 빼내어
한 놈이 한 놈을 덮으려 하고 있다
덮어주려 하고 있다
일생이 노숙이었으므로
온몸이 맨살 혹은 속살이었으므로
상처이었으므로 부끄럼이었으므로
덮어준다는 것,
사람으로 말하면 무슨 체위
저 흘레의 자세가 아름다운 것은
덮어준다는 그 동작 때문이 아닐까
맨살로 벽을 더듬는 움막 속의 나날
다시 돌아서면
벽뿐인 생애를 또 기어서 가야 하는 길이므로
내가 너를 네가 나를 덮어줄 수 있는
지금 여기가
지옥이더라도 신혼방이겠다
내 쪽의 이불을 끌어다가 자꾸
네 쪽의 드러난 어깨를 덮으려는 것 같은
몸짓, 저 육두문자를
사람의 언어로 번역할 수는 없겠다
신혼서약을 하듯 유서를 쓰듯
최선을 다하여
아침 한나절을 몇 백 년이 흘러가고 있다
시집 <따뜻한 외면>
실천문학사
복효근
1962년 전북 남원 출생. 전북대학교 국어교육학과 졸업.
1991년「시와시학」으로 등단.
시집『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』『버마재비 사랑』『목련꽃 브라자』외 다수